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미국 부통령 (문단 편집) === [[될 놈은 된다]] === 그렇다고 부통령이 '''정말''' 아무 의미 없는 자리라고 절대 말할 수 없다. 일단 기본 직함인 (명목상)상원의장으로서 받는 캐스팅보트 역할을 실질적으로 수행할 일이 없진 않다. 미국 상원은 구성이 각 주 당 2명씩으로 '''딱 100명'''이고 6년 임기에 2년마다 3분의 1을 새로 뽑아 인사 회전이 느리기에, 상정한 법안에 대한 여야 입장이 첨예하게 다르거나 같은 당 내에서도 의견이 갈려서 의원 개개인이 소신대로 표를 행사하는 난리통이 가끔 터져서 확실히 50대 50이 나올때가 있다. 적어도 하원보다는 훨씬 빈번하게 나온다. 미국에서 이러한 이유로 부통령의 캐스팅 보트가 행사된 경우는 총 299번으로, 평균적으로 1년에 한 번 이상은 나온 셈이다. 이에 대해 조금 예시를 들자면, 클린턴 정부 초기 감세정책을 포기하고 누진세 강화로 가는 세제개편안이 정확하게 50 대 50이 나왔고, 당시 부통령인 [[앨 고어]]가 찬성표를 던져서 통과시켰다. 앨 고어는 부통령 시절 총 4번의 캐스팅보트 역할을 수행했고, [[조지 H. W. 부시]]는 부통령 시절 7번, [[딕 체니]]는 8번, [[마이크 펜스]]는 임기동안 13번, [[카멀라 해리스]]는 현재까지 '''31번'''의 캐스팅보트를 행사했다. 가장 많은 캐스팅보트를 행사한 부통령은 [[존 C. 칼훈]]과 [[카멀라 해리스]](모두 31번)이며, 그 다음이 [[존 애덤스]](29번). 또한 부통령이 없을 경우 하원의장이 대통령직을 승계하는데, 하원의장이 대통령과 다른 당이라면 힘 들이지 않고 정권교체가 일어난다. 한마디로 부통령은 여당의 정권 보호를 위한 일종의 [[보험]]같은 역할을 수행한다. 또 위에 언급한 [[웨스트윙(드라마)|웨스트윙]]을 예로 들자면 부통령이 스캔들로 사직하여 부통령직이 공석이 된 상황에서 대통령 직을 임시로 대행 시켜야 할 일이 생겼는데, 하원 다수당이 공화당이어서 민주당 출신인 대통령의 권한 대행을 공화당 소속인 하원의장이 승계해 극중에서 “미국 최고의 보수주의자에게 대통령직이 넘어간다”고 참모들이 한탄하는(…) 골때리는 상황이 있었다. 더불어 대통령으로 가는 코스나 마찬가지라 부통령이 된다는 것이 정치인의 입장으로서 결코 나쁜 것은 아니다. 오히려 '''할 일이 적기에 사고칠 일도 없고''' 어쨌거나 '''대통령 바로 밑 자리'''인 부통령직이 후일을 대비한다면 더 안정적일 수도 있다. 부통령의 기본 권한이 아무리 별로 없다고는 해도 유사시 대통령 자리를 대신할 수 있는데다 부통령 역시 대통령과 똑같은 선거인단이 뽑은 선출직이라는 끝내주는 정당성을 자랑하므로, 부통령 경험은 대통령 자리를 노릴 때 충분히 내세울 수 있는 경력이다. 대통령이 잘해서 지지율이 높으면 그대로 묻어갈 수도 있고, 못했다면 거리를 두면서 차기 대선을 노릴수 있는 높은 인지도의 자리인 것이다. 실제 사례로 부통령을 역임한 뒤에 대통령에 도전하거나 대통령이 된 사례가 꽤 있다. 특히 1960년대 이후로 부통령 역임자가 일단 당의 대통령 후보 경선에 출마하기만 하면 어지간해선 경선에 승리할 정도다. 일례로 [[리처드 닉슨]], [[휴버트 H. 험프리]], [[월터 먼데일]], [[조지 H. W. 부시]], [[앨 고어]], [[조 바이든]]이 있다. 선거인단 5명 차이로 대권을 놓친 [[앨 고어]]나, '''세 번의 도전 끝에 대권을 거머쥐는 것까지는 성공했으나'''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불명예스럽게 사임한 [[리처드 닉슨]], 그리고 레이건에게 525명 vs 13명으로 미국 역사상 두 번째로 큰 선거인단 차이수로 패배한 [[월터 먼데일]]도 부통령 출신이고[* 제일 많은 선거인단 차이수를 기록한 대선은 [[프랭클린 D. 루스벨트]]가 기록한 525명 vs 8명의 [[1936년 미국 대통령 선거]]이다.] 당내 분열만 아니었으면 닉슨을 가볍게 이겼을 [[휴버트 H. 험프리]]도 부통령 출신.[* 흥미롭게도 낙선한 [[앨 고어]], [[리처드 닉슨]], [[월터 먼데일]], [[휴버트 험프리]]는 모두 각 정권의 "실세 부통령"에 속했다. 낙선의 원인은 전 정권과 그 이미지가 동일시되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다만 [[앨 고어]]의 경우 플로리다 주 개표 문제로 인해 패배했다. [[2000년 미국 대통령 선거]]를 보면 알겠지만 총 득표수에서 [[조지 W. 부시]]를 앞섰고 선거인단 수도 266명 vs 271명으로 플로리다 주 하나만 가져왔어도 고어가 대통령에 당선되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그때 플로리다 주지사는 부시의 형제인 [[젭 부시]]였다.] 위에서 부통령직에 대해 궁시렁대며 씹어댄 [[존 애덤스]]는 미국 최초의 부통령이었고 부통령 경력을 마무리한 다음 곧바로 [[조지 워싱턴]]의 뒤를 이어 미국 2대 대통령이 되었다. [[버락 오바마]] 정권에서 부통령을 지냈던 [[조 바이든]] 역시 [[2020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하여 대통령직에 올랐다. 부통령 퇴임 이후 정권을 내주었다가 재집권한 케이스는 닉슨에 이어 두 번째 기록이다. 20년 동안 정계에 몸담고 [[1996년]]에 대통령 후보로도 나왔던 [[밥 돌]] 상원의원도 [[1976년 미국 대통령 선거|1976년]] [[제럴드 포드]]의 러닝메이트였고, [[프랭클린 D. 루스벨트]]도 1920년 선거에서는 콕스의 러닝메이트였다. 그 해 승리한 [[워런 G. 하딩]]도 원래는 [[시어도어 루스벨트]]의 러닝메이트가 될 뻔 했다. [[1919년]]에 그가 죽어서 대통령 후보가 되었지만, [[주지사]]보다 부통령에 엮인 사람이 더 많을 정도. 그리고 대통령이 일부 권한이나 어느 정도 중요한 업무를 대행하도록 부통령에게 임의로 권한 일부를 위임해 주기도 하고, 부통령 자리가 실권은 없다지만 본인이 유능한 사람이고 정치적 입지도 높다면 그렇게 무시당하진 않으며 그게 심하면 오히려 정권의 실세로 등극하기도 한다. 물론 딱히 부통령에게 어디까지 위임을 해줘야 한다는 규정은 없기 때문에 영향력은 대통령과 부통령의 사정에 따라 다르다. 일반적으로 대통령과 정치적 사상/지향점을 공유하면서 대통령의 부족한 점을 보완하는 위치에 있는 부통령이라면 많은 권한을 위임받지만, 대통령과 정치적으로 대립하는 관계인데 정치적 이해관계에 의해서 부통령 후보가 된 경우는 완전히 뒷전 신세가 된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부터 부통령 권한 확대의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다. 상술하듯 부통령 시절 [[맨해튼 프로젝트]]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던 [[해리 S. 트루먼]]은 대통령이 되고 나서야 사실을 알고는 경악하여 부통령을 NSC 상임위원 중 하나로 지정했고, 고령인데다가 정치 경험이 일천했던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는 젊은 부통령 [[리처드 닉슨]]에게 국무회의 진행을 상당 부분 위임했다. [[존 F. 케네디]]와 [[린든 B. 존슨]] 시절에도 백악관 내 다수의 소규모 프로젝트를 부통령이 지휘했다. 재미있는 점은, [[존 낸스 가너]]와 [[해리 S. 트루먼]] 사이에 [[프랭클린 D. 루스벨트]]의 부통령이었던 [[헨리 A. 월리스]]는 핵무기 개발의 가능성을 검토하는 회의의 의장이 되는 등 미국 역사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실세 부통령이였다. 월리스 개인은 1948년 대통령 선거에서 [[진보당]]으로 독자 출마하여 2.6%를 득표해 4등이 될 정도로 상당한 능력을 가진 정치인이었다.[* 3등은 남부 출신 [[주권민주당]] 후보였다.] 2만 표만 더 얻었어도 트루먼의 낙선에 충분히 기여할 수 있었다. 그리고 관료로서도 정말 독보적인 인물로, 특히 미국의 막대한 농업 생산력 증진에 큰 업적을 남겼다. 월리스는 FDR의 제4기 임기의 부통령 경선에서 출마를 제지받지 않았지만, 당내 중진들은 "FDR의 의중은 트루먼에게 있다"라는 흑색선전으로 그를 저지시켰다. 훗날 중진 중 하나는 "여기 월리스를 대통령이 되지 못하게 한 자가 누워있다"라는 말을 남겼다.[* 그는 [[미국 대통령]]이 될 가능성이 있었던 인물 중에는 가장 진보적인 인물이었고, 만약 이 사람이 대통령이 되었다면 냉전기는 전혀 다르게 흘러갔을 가능성도 높다. 과장 좀 섞어서 냉전과 매카시즘 자체가 없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소련에 대단히 우호적이었기에 지금의 [[대한민국]]이 존재하지 않았을 가능성도 있다.] 반면 트루먼은 "[[까]]가 없다"라는 이유로 당내 경선에서 1위였던 월리스와 2위까지 제치고 부통령이 된 인물이었다. 여하간 사람마다 다른거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